행복 정류장

스무 살의 그 친구를 생각하면 행복하다.

햇살나그네 2021. 9. 4. 07:00

열 아홉, 스물살이 되는 해,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신발공장 00화학에 신입사원 공채로 만났다. 파란 잎새에 이슬 머금은 것처럼 맑고 투명했던 우리는 산울림의 노래나 김만수의 푸른 시절을 부르며 세상모르게 놀면서 친해졌다. 열 대 여섯 명되는 동기들끼리 회사근처 중국집에 모여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애인이 하나 둘씩 생기고, 군대를 가고, 시간이 흐르면서 동기들은 하나, 둘 회사를 떠나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도 하고, 결혼을 하고, 세월 따라 열심히 사는 사이에 우리는 나이 50 이 되었다.

그 때 무역과에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밝고 명랑하고 예의바른 그 친구와 경리과에 있던 순둥이인 나는 점심식사 시간만 되면 같이 만나서 회사 식당으로 밥 먹으러 가고, 잔디에 누워 하늘을 보며 노래를 부르고 미래를 계획하고 어디든 붙어 다녔다. 서로 연애 상담도 하고, 송도해수욕장 거북바위에 앉아 소주도 마시며 젊음을 불태웠다. 어느 해 대보름날 저녁에는 그 친구의 손에 이끌려, 무역과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서 달을 보며 각자 소원을 빌기도 하였다.
그 후에 군대에 다녀오고,각각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여 헤어져 있던 시간에는 편지를 주고 받으며 우정의 끈을 놓치지 않았고, 각자 배우자를 만나 같은 해에 결혼을 하고, 이듬해에 같이 아들을 낳았다. 살아가는 아픔과 기쁨을 나누던 친구다. 친구가 다니는 회사가 인도네시아에 회사를 설립하게 되어 인도네시아에 간지가 어느새 14년이 된다. 지금은 거기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 친구가 오랫만에 귀국해서 두 집, 부부가 같이 하루를 함께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경주, 감포, 골굴사 등 이곳저곳을 다니며 참 오랜만에 그의 맑고 빛났던 눈과 웃음을 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나는 친구를 마음으로만 사랑하는 소극적인데 반해, 그 친구는 만나면 재밌게 즐겁게 해주는 해맑은 녀석이다. 언제나 나를 배려하는 편안하고 따뜻한 그 친구를 만나면서 좋았던 그 스무 살의 나를 보았다. 그 친구는 나이 들면 나랑 이웃해서 같이 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내일 다시 인도네시아로 간다. 내일 공항에 가서 다시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했다.

산다는 것은,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나의 마음과 시간을 기꺼이 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오늘 새삼 생각한다. 이곳에 가족을 두고 혼자 머나먼 타국에서 사는 그 친구의 외로움을, 친구라면 항상 헤아리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건강하게 한 10년만 더 열심히 일하고 다시 만나고 즐겁게 지내기로 한 약속이 큰 어려움 없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친구야 사랑한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게 열심히 지내렴.
<이 글은 리더십 강의 받을 때 발표한 원고 내용임>

=>몆년 후에 친구의 아들이 결혼하던 때 귀국해서 한 번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10년 넘게 만나지 못하고 있다. 함께 노년을 이웃에서 같이 살고 싶다는 약속은 지켜질지 모르겠다. 한국으로 귀국할 시기를 놓쳐서 쉽게 올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고 한다.그래도 스무살 때묻지 않았던 그 시절의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친구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다시 만난다면 그 친구가 내게 해주었던 것처럼 더 배려하는 편안하고 따뜻한 친구가 되고 싶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푸르도록 빛났던 시절이 생각나 행복합니다.

ps.세월이 한참 지나서 가 본 그 자리에는 내가 근무했던 사무실 건물만 남기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습니다.

그 때 근무했던 회사 사무실 지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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