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산책

우포늪에서

햇살나그네 2025. 6. 8. 14:52

늪은

아무말도 내게 해주질 않는다

억만년의 세월을 감추고

그냥 침묵한 채

우울해 하지 않는다

아무렴 어때,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다가서면

느낄 수 있으니까

 

나는 다만,

물안개 피는 늪을 만나고 싶었다

물안개에 묻혀

늪이 되고 싶었다

 

내 안에 있는 아픔들 감추고

백년세월, 있는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남고 싶었다

 

내 앞에 있는 늪은

지금, 한낮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

아무 말이 없다

 

늪은

아직도 늪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이

침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출처:김정우 시인,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랑으로 남고 싶어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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