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산책

다음에

햇살나그네 2022. 2. 3. 07:00

<좋은 시>다음에

-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했었지
다음에, 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서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 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 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히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메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출처:신현림의 '시가 너처럼 좋아졌어' 중에서>

=>햇살나그네 노트:
우리는 그냥 하는 인사로
'다음에 봐'
'다음에 밥이나 먹자'
'다음에 한 잔 하자' 라고 말한다.
실천할 확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실천하지 못한다면 꼭 후회할 것이다.

다음에 말고 지금 하자.

행복은 가까운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투자해서 추억을 쌓아가는 것에 있다고 한다.

다음에 하고 싶어도 그 사람이 없다면 약속은 의미가 없다.

728x90
반응형
LIST

'좋은 시 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0) 2022.03.14
<좋은 시>어머니 3  (0) 2022.03.13
결혼에 대하여  (0) 2022.02.02
겨울 밤 2  (0) 2022.02.01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마디 말  (2) 202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