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산책

<좋은 글 산책> 감정과 기분의 차이

햇살나그네 2022. 10. 31. 07:00

감정과 기분의 차이

여기에서 감정과 기분의 차이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우리 모두가 감정도 있고, 기분도 있다. 둘 다 느낌이 개입하기는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감정이 기분보다 짧다는 점이다. 기분은 하루종일 지속될 수도 있고, 때로는 이틀로 가지만 감정은 몇 분, 때로는 몇 초 간격으로 왔다가 사라진다.기분은 미약하지만 지속적인 감정 상태와 흡사하다. 욱하는 기분이라면 항상 약간 짜증이 나 있으며 언제고 화가 폭발할 수 있는 상태다. 우울한 기분이라면 약간 슬프며 언제고 아주 슬퍼질 수 있다. 혐오스러운 기분에는 역겨움과 경멸이 담겨 있으며, 도취감 또는 고조된 기분에는 흥분과 즐거움이, 불안한 기분에는 두려움이 담겨 있다.

기분은 구체적인 감정으로 나타난다. 욱하는 기분일 때 우리는 화낼 구실을 찾으며, 세계가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 곳이라고 해석하며 심지어는 그렇게 해석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욱하는 기분일 때 우리는 보통 때 같으면 화내지 않을 일에 화를 내며, 진짜로 화가 나면 그 분노는 욱하는 기분이 아닐 때보다 더 강렬하고 오래 간다.

기분은 얼굴이나 목소리에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 어떤 기분인지는 금방 알 수 있는데, 그때 우리가 보는 것은 그 기분이 잔뜩 실린 감정의 신호다. 어떤 기분에 젖어 있으면 유연성이 약해지기 대문에 주변 환경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를 제때 감지하지 못하여 세계에 대한 해석과 대응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감정도 같은 효과를 일으키지만 불응 기간이 길어지지 않는 한, 잠시뿐이다. 하지만 기분은 몇 시간씩 지속된다.

기분과 감정의 또 한 가지 차이는, 어떤 감정이 시작되어 스스로 인식하게 되면 대개는 그 감정을 일으킨 원인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자신이 그런 기분인지를 알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기분은 뚜렷한 이유 없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깼더니 기분이 나쁠 때가 있고 혹은 뚜렷한 이유없이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분명히 신경 화확물질의 자율적인 변화가 어떤 기분을 일으키고 지속시키는 것이겠지만 나는 아주 밀도 높은 감정적 경험이 이런 기분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극심한 분노가 욱하는 기분을 일으킬 수 있으며, 강력한 기쁨이 고조된 혹은 도취된 기분을 일으키기도 한다.

앞에서 나는 감정이 우리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며, 그것을 완전히 제거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나는 기분이 우리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주장을 인정할 수 없다. 기분은 종의 생존에 뛰어난 적응력을 보였기 때문에 진화과정에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 구조가 빚어낸 의도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기분은 선택의 범위를 축소시키고, 우리의 생각을 왜곡시키고,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기 힘들게 만들며, 보통은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 밀도 높은 감정적 경험에 의해 기분이 야기되는 경우는,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하게 해주는 감정의 기능과 같다는 주장도 있다.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는 기분이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에 비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훨씬 크다고 본다. 나는 할수만 있다면 어떤 기분도 없이 감정만 갖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욱하는 기분이며 우울한 기분을 없앨 수 있다면 어떤 도취감도 기꺼이 포기하련다. 그러나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동인이 꿋꿋한 노력을 통해 가라앉았더라도, 그 동인과 관련된 어떤 기분에 젖어들게 되면 다시 격해질 수 있다. 팀이 욱하는 기분일 때 누군가 놀린다면 다시 화를 터뜨릴 수 있다. 르두가 주장했듯이 어떤 스트레스성 상황만이 어떤 동인을 그 감정에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기분도 그런 작용을 한다. 어떤 동인이 약화되었거나 가라앉아 더 이상 감정을 야기하지 않게 되었을 때라도, 걸맞은 기분에 젖어들면 다시 격한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어떤 기분에 젖어 유달리 민감해져 있지 않을 때라도, 우리 대다수는 최소한 어느 정도는 스스로 원하지 않은 일에 감정이 폭발하는 상황을 경험한다.

<출처:폴 애크먼의 얼굴의 심리학 중에서>


경주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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